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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7일 화요일

하나님의 교회 ‘헌혈 릴레이’ 줄이어

하나님의 교회 ‘헌혈 릴레이’ 줄이어
세종·서산 성도 420여명 ‘375차 전세계 생명사랑 헌혈릴레이’
 
 
 
▲ 서산, 세종지역 하나님의 교회 성도 400여명은 지난 16일 서산 하나님의 교회와 세종 하나님의 교회에서 각각 ‘전 세계 유월절사랑 생명사랑 헌혈릴레이’운동을 전개했다. 충남 혈액원의 후원 속에 진행된 당일 헌혈생사에는 홍성, 당진, 태안, 보령, 공주, 논산, 부여 등 충남권 인근교회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이 참여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사진=서산 하나님의 교회


[굿모닝충청 한남희 기자]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을 진정성 있게 실천해 온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 목사)가 올해에도 전 세계 지역 곳곳에서 ‘유월절사랑 생명사랑 헌혈릴레이’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서산, 세종지역 하나님의 교회 성도 400여명은 지난 16일 서산 하나님의 교회와 세종 하나님의 교회에서 각각 ‘전 세계 유월절사랑 생명사랑 헌혈릴레이’운동을 전개했다. 충남 혈액원의 후원 속에 진행된 당일 헌혈생사에는 홍성, 당진, 태안, 보령, 공주, 논산, 부여 등 충남권 인근교회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이 참여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의 교회 관계자는 "오는 4월3일 전국과 전 세계 2,500여개의 하나님의 교회에서 일제히 유월절(逾越節)을 지킨다. 하나님의 살과 피를 이어받는 약속이 담긴 귀중한 절기로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는다"며 "유월절을 통해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을 본받아 혈액부족으로 위급한 처지에 놓인 이웃에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이날 원활한 헌혈을 위해 충남혈액원은 세종, 서산 하나님의 교회에 헌혈버스 3대를 제공, 420여명의 성도가 헌혈을 마쳤고, 지자체 관계자 등이 참여해 봉사자들을 격려했다.

김철수 충남혈액원 팀장은 봉사현장에서 "헌혈수급이 어려워 고충이 있을 때마다 성도들의 헌신으로 너무나 감사하다"며 "지난 9일에도 천안지역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이 헌혈에 대거 참여해 감동했다. 생명을 이끼는 성도들의 진정성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김경호(40·세종시 아름동)씨는 "약간의 통증보다는 채혈 검사결과가 은근히 염려됐는데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데 작은 보탬이 돼 매우 기쁘다"고 말했으며 이혜임(여,40,석림동)씨는 "혈액은 곧 생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혈액부족은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다.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가족의 생명을 살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성도들은 평소 가정에 소지하고 있던 헌혈증도 당일 행사에 가져와 헌혈증을 기부했다. 또한 이번 헌혈을 통해 수합된 혈액은 충남혈액원에 모두 기증돼 수혈이 필요한 곳에 공급될 예정이다.
 
행사를 준비한 서산 하나님의 교회 조용승 목사는 "하나님의 교회의 헌혈 릴레이 운동은 말 그대로 전세계 각 도시별 릴레이 운동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지칠 줄 모르는 우리 몸의 심장처럼 지역별로 바톤을 연이어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성도들의 희생이 담긴 헌혈로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우리사회에 더욱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는 시작점이 되기를 소망한다. 앞으로도 헌신적인 봉사로 지역사회의 연합과 더불어 삶의 질 향상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하나님의 교회의 헌혈행사는 지난 9일 천안지역을 시작으로 12일 서울, 인천, 16일 수원, 서산, 세종, 부산, 18일 순천, 25일 강릉, 26일 광주, 4월 8일 춘천, 전주를 비롯해 미국과 인도, 필리핀, 페루, 아일랜드 등 내달 말까지 전세계 각 지역 하나님의 교회에서 ‘유월절 사랑 생명사랑 헌혈릴레이’운동을 계속 이어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 유월절이란? -

하나님의 교회에서 중시하는 유월절은 성경에 기록된 연간 3차 7개 절기 가운데 가장 먼저 오는 절기다. 유월절은 영어로 PASSOVER(넘어가다)이며 한자로는 넘을 유(逾), 건널 월(越), 절기 절(節)을 사용하며 그 뜻은 ‘재앙이 넘어가고 건너가는 절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그대로 매년 성력(유대력) 1월 14일 저녁,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킨다. 하나님의 교회는 2000년 전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세상에 전함으로 따뜻한 온정이 넘치는 사회를 구현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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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일 월요일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어릴 적 부르던 동요가 얼마 전 TV에서 흘러나와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다 왜 텔레비전에 나오는 걸 좋겠다고 한 것일까 궁금해졌다.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예쁜 얼굴을 가져 TV에 나오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관심을 받게 되어 좋겠다는 뜻일까? 그러면 춤도 못 추고 노래도 못하는 못생긴 사람은 TV에 나오는 걸 싫어할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면서 말이다.

요즘 텔레비전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의 육아와 소소한 일상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이 TV를 통해 전국에 전파를 타는지도 모른 채 먹고, 자고, 놀고를 반복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이 프로를 보면서 문득 한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트루먼 쇼’다. 영화 속 주인공인 트루먼은 탄생부터 성장과정, 입학, 졸업, 사랑, 결혼 등 모든 것이 연출자가 의도한 각본에 따라 살아간다. 그의 생활 터전은 완벽하게 꾸며진 하나의 거대한 세트장이며, 그의 가족과 지인, 행인들은 모두 각본대로 연기하고 있는 배우들이다. 전 세계 시청자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지만 트루먼은 그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출근길 상황과 하늘에서 떨어진 조명세트, 엘리베이터 안에 대기 중이던 엑스트라, 자신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려다 어느 순간 이유 없이 사라진 여자친구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세트장 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트루먼은 그 가상의 세계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지만 주변의 달콤한 유혹과 그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바닷가 폭풍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가상세계를 벗어나 진짜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고, 그는 결국 사투를 벌인 끝에 세트장을 박차고 나올 수 있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들이나 영화 트루먼 쇼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사실은 내 영혼의 이야기이자, 이 지구상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생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실상이고 현실이라고 믿은 채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천상에서 바라볼 때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들과 영화에 등장하는 트루먼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범죄하여 쫓겨난 영혼들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오셨다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19:10, 마태복음 9:13).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고린도전서 4:9)

우리의 삶이 천사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고 하셨다. 이를테면 천사세계에서 범죄하여 쫓겨나 지구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천상에 송출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천상에서 지구별 채널을 시청하고 있는 천사들은 어떤 이야기에 가장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을까?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0~12)

사망도 고통도 아픔도 없는, 그야말로 부러울 것 없는 천상의 삶을 살아가는 천사들조차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 ‘복음’이라 하였다. 당연히 천사들의 주된 관심도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있을 것은 자명하다. 이 복음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알려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 (마태복음 4:23)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복음은 새 언약의 안식일과 유월절을 비롯한 3차 7개 절기, 머리수건 규례 등이다. 이 모든 새 언약의 규례를 지켜 행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천상에서는 가장 주목받는 시청률 1위 프로그램일 것이다. 아마도 천국방송 퇴출 1순위의 출연자들이 있다면, 일요일 예배, 크리스마스가 성경에 없는 불법인 줄 알고 있으면서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는 자들일 것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나오기 전, 모든 인생들이 이 사실을 꼭 깨달아 천국방송의 주인공들이 되길 바란다.

출처_패스티브



2014년 10월 23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사랑이 식는 이유]

사랑이 식는 이유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은 기쁨과 희망보다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하다. 누군가는 이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불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는 더욱더 불안과 슬픔이 커지고 있다. 이웃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거나 믿지 못하는 사이가 된 지 오래며, 돈을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아내와 남편, 심지어 자식까지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을 서슴 없이 벌이기도 한다. 세상은 왜 이토록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사회가 되었을까. 왜 사람들은 원통함과 분을 참지 못하는 것일까. 어떻게 사랑하는 가족을 버릴 수 있는 것일까. 성경은 일찍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을 예언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1~5)


사도 바울은 세상이 각박해지고 사람들이 악해지는 이유와 현상에 대해 여러 가지 예를 들어 꼬집고 있다. 요지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는 이유가 불법을 행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태복음 24:3, 12~13)

결국 현재 우리 사회에 이토록 불안과 절망과 슬픔이 가득한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법과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과연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수님께서 이미 그 명쾌한 해답을 알려주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계명 곧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한다. 안식일, 유월절을 비롯한 7개의 절기, 여 성도들의 수건 규례 등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불법과 불안과 절망으로 혼탁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님의 계명을 끝까지 인내로써 지키는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기쁨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이 전해지고 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도서 2:14)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출처_패스티브
 
 

2014년 10월 13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성령을 받으려면]

성령을 받으려면
하나님말씀대로 순종하는 하나님의교회




2,000년 전 예수님을 믿었던 사도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다. 그 성령의 역사로 사도들은 방언을 하며 복음을 전파하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성령의 역사는 실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오늘날 신앙의 길을 가는 우리들도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구하고 있다. 해서 하나님을 진실되게 믿는다고 하는 신앙인들은 성령을 받기 위해 부흥회나 유명 목사의 집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2,000년 전 사도들이 성령 받은 것은 떠들썩한 부흥회나 유명 목사의 집회가 아니었다. 단 한 가지 조건, 그것이 완벽했을 때 성령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사도행전 5:32)


성령 받는 조건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어떤 이유나 변명, 자신의 생각을 배제한 말 그대로 ‘순종’이다. 이러한 순종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성령의 임재도 없다. 이스라엘의 제1대 왕이었던 사울도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아 결국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들어갔던 역사가 있었다. 이를 반추해 볼 때, 우리는 과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지 스스로 신앙의 길을 돌아보아야 한다(사무엘상 15:1~31).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무엘상 16:14)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은 결과는 비참했다. 불순종의 말로는 성령이 떠남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지 못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사울의 역사를 교훈 삼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성령의 임재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성교단들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안식일, 3차 7개의 절기 등 어느 것 하나 지키지 않고 있음에도 순종을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명하신 가을 절기인 초막절도 지키지 않으면서 사람의 계명인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기성교단들의 행태를 과연 ‘순종’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성령을 받고자 한다면 지나친 착각일 것이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스가랴 14:16~19)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는 결코 성령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신은 떠나갈 것이며 악령의 역사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출처_패스티브

2014년 9월 30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다수결의 폐해]

다수결의 폐해
성경대로 행하는 유일한 하나님의교회
 
 
 
다수결의 원칙은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가정 하에 다수의 의견을 전체의 의견으로 결정하는 집단 의사결정 방식이다. 의사결정에서 만장일치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제각각 다른 생각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매번 하나로 모으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고 구성원들의 입장이 갈릴 때 보통 ‘다수결의 원칙’을 들어 단체의 의사를 결정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의사결정 방식 중 하나인 다수결의 원칙에는 심각한 오류가 숨어 있다.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닌데도, 소수의 의견은 무시되고 다수의 의견이 정답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또 다수결로 결정된 사항이 잘못된 판단일 경우에도 그 결정에 대해 책임질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일례를 들어보자. 한 사진 동호회에서 출사를 가기로 했다. 동호회 회원들은 예쁜 사진을 담기 위해 사진기도 점검하고, 필름도 넉넉히 준비했다. 예쁜 옷을 입고, 맛있는 도시락도 싸서 기분 좋게 출발을 했는데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출사장소가 초행길이었던 동호회 회원들은 당황했고,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각자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오른쪽 길일지 왼쪽 길일지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때 동호회 회장은 “다수결로 정합시다”라고 소리쳤다. 이에 동의한 회원들은 거수를 해서 총 20명 중 19명이 선택한 왼쪽 길로 출발했다. 하지만 가도 가도 목적지는 보이지 않고 고속도로에서 헤매다 시간을 다 보내게 되었다.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선택한 길이 목적지로 가는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에는 누구 탓도 못하고 서로 기분만 언짢아진 상태로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


다수결의 원칙에 입각할 때 동호회의 의사결정 방식이 틀렸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그리고 그 실패에 대해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 다수결의 최대 단점이다. 이렇듯 다수결의 원칙은 구성원간의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통해 소수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과학적 지식이나 진실과 거짓 여부가 명확한 안건에 대해서는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 지동설이 과학적으로 명백한 사실이지만,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사회 구성원의 과반수 이상이라고 하여 천동설이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당장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의 초행길을 걷고 있다(잠언 27:1). 이 세상에 어느 길이 성공의 길인지 알고 선택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가끔은 무의식적으로 대중의 선택을 따르는 경우도 많다.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지만 자기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위안을 삼기도 한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어서도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에 옳고 그른 것은 없다.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데는 절대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될 수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진리를 찾기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교회가 옳은 교회이며, 큰 교회가 진짜 교회라는 오류에 빠져 있다. 그러다 보니 성경에도 없는 일요일 예배를 지키고,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구원받았다고 자신한다. 과연 믿음의 다수결을 주장하는 그들이 올바른 판단을 했을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애굽기 20:8)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출애굽기 31:13)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느헤미야 13:17)


틀렸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안식일을 지키라 명하셨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 악인이라 꾸짖으셨다. 하나님께 악인으로 정죄된 자가 구원을 받았을 리 만무하다. 이렇게 성경의 몇 구절만 살펴보더라도 안식일은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는 진실이다. 처음부터 다수결의 원칙이 거론될 일이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믿음의 최종 목적지는 천국이다. 하지만 천국은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미지의 세계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행하느냐 행치 않느냐에 달려 있다(마태복음 7:21~23). 그리고 사람의 계명을 따르는 것은 인도하는 자도, 인도를 받는 자도 그 끝은 멸망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이사야 9:16, 마태복음 15:14). 친히 구원의 길이 되어 주시고, 진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사는 길이며 옳은 길이다.
 
 
 
 
출처_패스티브 https://www.pasteve.com/
 
 

2014년 9월 28일 일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갈릴레이의 망원경]

 갈릴레이의 망원경



인간의 시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서 너무 작은 것도 볼 수 없고 너무 먼 것도 볼 수 없다. 그러나 망원경을 통해서 살펴보면 아무리 작은 것도, 먼 거리에 있는 사물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1990년 4월, 미국의 우주선 디스커버리호에 실려 지구 상공 610km 궤도에서 우주 관측을 하고 있는 허블우주망원경의 성능과 위력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길이 약 13m, 무게 약 12t의 대형버스 크기의 허블우주망원경은 인간의 시력보다 100억 배 정도 뛰어나다. 16,000km의 먼 거리에서 빛을 내는 반딧불이를 관찰할 수 있고, 1.6km 떨어진 거리에서 머리카락 두께의 틈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지동설로 유명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처음부터 로마 카톨릭과 투쟁할 것을 각오한 것은 아니었다. 수학자였던 그는 물리학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실험을 많이 하였는데, 1609년 군사적인 용도로 개량된 망원경을 발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성능이 더 나은 망원경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망원경을 가지고 성능실험을 하다가 우연히 달을 보게 되었다. 이제까지 그가 알고 있던 달은 유리구슬처럼 매끈매끈한 달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해보니 놀랍게도 움푹 파인 분화구와 울퉁불퉁한 표면을 갖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었다. 천동설은 오랜 세월 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왔고 널리 보편화된 상식으로 굳어져 있었다. 이처럼 돌같이 딱딱하게 화석화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전 세계가 새로운 지동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결코 하루아침에 된 것도 아니고 쉽게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갈릴레오에 앞서 코페르니쿠스도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해 지동설을 주장하긴 했지만 과학적인 증명이 없었기에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로마 카톨릭의 오판으로 갈릴레오 역시 이단학설을 주장하는 이단자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결국 그는 지동설을 입밖에 내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는 수모를 당하고, 종교재판 후 그는 8 년간의 여생 동안 가택연금을 당하는 고통 속에 임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갈릴레오 그가 망원경을 통한 천체 관측과 수많은 실험결과를 통해서 얻은 객관적인 증거자료가 없었다면,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나 천주교의 천동설 신념과 일반인들의 상식을 뒤집는, ‘지동설’이라는 위험한 주장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확실한 증거자료가 있었기에 오랜 세월 불편했던 진실을 세상 밖에 드러내기 위한 거짓과의 싸움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교황청으로부터 온갖 협박과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지동설의 이론을 확립하기 위해 객관적인 증거자료를 확보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는데, 고맙게도 그의 망원경이 일등공신 노릇을 톡톡히 해주었다.



무언가를 관찰하기 위해 망원경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그 조작법을 배우고 익히려고 애쓸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영적 세계는 육신의 안목으로는 볼 수 없는 곳이다. 아무리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한다 해도 결국 과학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영적 망원경에 해당하는 성경을 통해서만 놀라운 신비의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오직 성경만이 광활한 대우주의 영혼세계에 대한 지식을 풍성하게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영혼문제를 탐구하고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신 최고의 값진 선물이자 영적 망원경인 ‘거룩한 말씀’이라는 뜻의 성경을 주야로 상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성경을 단지 이스라엘의 역사책 정도로 생각하고, 심지어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성능 좋은 망원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용 목적도 모르고 사용 방법이나 필요성을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때 중세시대에는 일반인은 성경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고 금서목록에 올라 있다가 오랜 기간 후에 드디어 빛을 보게 되기도 했다. 이유는 1%의 탐욕을 꾸짖고 99%를 위로하는 책이라서 그랬다는 말도 있다. 당시엔 아마도 권력자들에게는 불편했던 책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성경을 깊이 연구하거나 성경대로 하는 것을 싫어하는 목사들이 많이 있는데, 뭔가 불편한 진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도 그런 목사를 만나본 적이 많다. 그들은 한결같이 성경을 펴지 못하게 방해하면서 자기 주장만 횡설수설 늘어놓는다. 그럴 때면 뭔가 진실이 드러나거나 거짓이 탄로날까 봐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오로지 구원을 목적으로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진실한 기독교인이라면 어떠한 어려움이나 시련도 다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해봐야 할 것이며 무조건 ‘우리목사님’만 찾지 말고 성경에서 구원의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구원과 영생은 구원자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데 왜 ‘우리목사님’만 찾고 매달리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안식일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 ‘우리목사님’을 붙들고 뭘 배우겠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다시 말하면, 잠잘 때마다 성경책을 머리맡에 두거나 교회에 오갈 때마다 성경을 들고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어떤 각도로 보고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넷째 계명으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주일성수를 일요일에 하고 있으니 안식일이 일요일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일곱째날 안식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이고 누구의 잘못인가? 이래도 되는 건가? 이게 어디 보통 문제인가?


성경말씀 외에 사람의 생각을 함부로 보태거나 빼면 재앙을 받거나 생명의 축복을 빼앗길 수 있다. 성경말씀은 성령의 감동을 입은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기록한 말씀이기 때문에 100% 신뢰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목사의 권위적인 명령과 요구에 무조건 아멘으로 굴복하고 교단, 교파, 교리에 옭아매여 있지는 않은가? 설교의 방향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엉뚱하게 성경에 없는 인간적인 철학과 교양강좌나 읊어대고 있는데도 소신껏 ‘성경말씀을 가르쳐달라’고 말할 수 없다면 심각한 상황이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생소하게 느끼고 있는 안식일, 유월절을 비롯한 하나님의 절기들, 재림 예수님, 어머니 하나님과 같은 말씀은 성경에 없는 것이 아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영적 망원경인 성경을 통해 얼마든지 확인하고 깨달을 수 있는 내용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라고 하셨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없는 주일성수,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을 신성시하고 합리화시키며 약물중독자처럼 각 교단의 교리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도 성경에 기록된 안식일과 유월절 같은 진리는 한사코 외면하고 거부하는 이유는 각종 신학논리와 학설에 묶여 오랜 시간 정신적인 노예가 되어 있다 보니 생겨난 부작용일 것이다.


이것은 흡사 망원경의 관측결과는 무시하고 오직 자신들만의 편협한 상식과 기성교단의 세력을 등에 업고 끝까지 천동설을 주장하며 교단을 옹호하는 일에만 혈안이었던 카톨릭 종교재판소의 권위주의적 이단심문관들처럼 어리석은 과오와 잘못된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심히 안타깝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천동설 옹호자들의 등쌀에 못 이겨 기를 못 펴고 무시당하다가 결국 죽긴 했으나 이제는 전 세계가 그들의 지동설을 받아들이고 있다. 아무리 거센 핍박과 비방을 받는다 해도 그것이 진리라면 끝까지 따르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갈릴레오가 친구에게 편지로 남긴 말이 있다. "진실을 모르면 바보, 진실을 알면서도 거짓을 가르치면 범죄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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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4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엄숙한 절기,대속죄일]

엄숙한 절기, 대속죄일

대속죄일은 자신이 지었던 죄를 회개하며
경건하게 보내야 하는 하나님의 규례다.

유대인에게 있어 가장 엄숙한 절기를 말하자면 속죄일을 들 수 있다. 성력 에다님월(7월) 10일 속죄일(욤 키푸르)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아서 내려온 날이다. 양력으로는 9~10월경에 해당한다.



첫 번째 받았던 십계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함으로 진노하여 깨뜨려버린 후 하나님께서는 노심초사 하나님의 용서만을 바라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모세를 부르셨다(출애굽기 32:1~35). 첫 번째 십계명을 깨뜨린 지 40일째 되던 날이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 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아침 전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출애굽기 34:1~2)

그날이 성력 6월 1일이었다. 모세는 40일 동안 하나님과 함께하며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았다. 모세가 내려오기로 한 열흘 전 성력 7월 1일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을 불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모세를 기다렸다. 그리고 모세가 두 번째 돌판을 들고 내려오던 이날을 기념해 하나님께서는 속죄일로 정해주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레위기 23:26~28)

속죄일은 대제사장에게는 아주 특별한 날이다. 일년에 딱 하루 ‘회개의 10일’이라 불리는 이날에 대제사장만이 행하는 의식이 있다. 바로 지성소의 출입이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안치된 지성소는 성소의 두 번째 장막으로 그 누구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특별한 장소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의 죄사함을 위해 잡은 염소의 피를 언약궤 덮개인 속죄소에 뿌렸다.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히브리서 9:3~7)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해 동안 지었던 모든 죄를 이날에 와서야 온전히 사함받을 수 있었다. 속죄라는 의식은 하나님과 멀어졌던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금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엮어주는 예식인 것이다. 그러기에 더없이 엄숙하며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이날을 기념해 왔다.

이와 함께 속죄일에는 성소에 뿌렸던 모든 피를 모아 ‘아사셀’이라는 이름의 염소에게 지우고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로 보내는 의식이 있다.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레위기 16:6~10)

이러한 예식은 성전 되신 예수님으로 성취된다. 즉 일상생활에서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성소로 임시 옮겨졌다가 속죄일을 통해 아사셀 수염소에게 그 죄를 안수해 광야 무인지경으로 보내 죽게 한 것같이, 평상시에 지었던 우리들의 죄가 성소로 표상된 그리스도에게로 임시 옮겨져 있다가 속죄일을 통해 사단 마귀에게로 옮겨진 후 사단은 최종적으로 죄를 짊어진 채 광야 무인지경 같은 지옥에서 고난받으며 멸망할 것을 대속죄일 절기를 통해 그 이치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대속죄일은 죄사함을 바라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일년에 한 번 꼭 지켜야 하는 예식이다.

이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이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레위기 23:29~31)

대속죄일은 자신이 지었던 죄를 생각하며 회개의 마음으로 경건하게 보내야 하는 하나님의 규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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