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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0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성령의 신부는 누구인가]

성령의 신부는 누구인가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밧모섬에서 유배 중이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로 성령시대의 구원자에 대한 예언을 기록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과 신부로부터 시작되는 구원의 메시지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교계에서는 이 성구의 ‘신부’ 존재를 놓고 갑론을박하며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교리비교를 통해 과연 ‘신부’는 누구를 의미하는지 살펴보자.

신부는 성도다

① 근거
기성교단에서는 요한의 계시 속에 드러난 ‘신부’를 성도라고 말한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둔 신부’라는 근거는 성경의 이 말씀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린도후서 11:2)

사도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서신에서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 한다’고 기록했다. 남편이신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정결한 처녀는 당연히 ‘신부’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신부’라는 단어는 성도를 뜻한다고 여긴다.

② 교단
신부를 성도라고 믿는 교단은 모든 기독교 및 소종파인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 여호와의증인 등이 있으며, 천주교에서는 신부를 말 그대로 주교 다음 가는 성직자인 신부(神父)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③ 결론
성경에 기록된 ‘신부’가 ‘성도’라고 해석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신부’를 오직 ‘성도’라고만 해석한다면 오류에 빠지고 만다. 성경의 전후 문맥을 잘 살펴서 그 의미를 파악하지 않고 단편적으로만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뜻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양’에 대해 살펴보자. 성경에서 양(羊)은 통상적으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를 말한다. 그렇다고 성경의 모든 ‘양’을 성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적인 의미를 잘 모르고 단편적으로만 본다면 억지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부’가 ‘성도’라는 해석도 단편적 시선에 불과하다. 요한계시록 22장에 성령과 함께 등장하는 ‘신부’가 ‘성도’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같은 구절에도 잘 드러나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께서 주시는 것은 ‘생명수’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주시는 생명수는 오직 구원자께서만 베푸실 수 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5~7)

‘보좌에 앉으신 이’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목마른 자들에게 생명수를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생명수를 주시는 ‘성령과 신부’는 다름 아닌 구원자가 된다. 성령만이 구원자가 아니라 ‘신부’ 또한 구원자로 오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니 ‘신부’는 오직 ‘성도’로만 해석된다는 주장은 비성경적 주장이다.

성도는 생명수를 받는 존재이지 결코 생명수를 주는 존재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는 구원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지 구원을 베풀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신부’를 ‘성도’라고만 해석한다면 성도 자신들이 하나님이라는 셈이 된다.

신부는 하늘 어머니다

① 근거
요한계시록 22장에 성령과 함께 나타난 신부는 하늘 어머니다. 요한은 21장에서 천사가 보여준 신부의 존재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신부는 곧 어린양의 아내다. 성경의 ‘어린양’은 예수님이다(요한복음 1:29). 그러니 ‘어린양의 아내’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아내’를 의미한다. 하지만 초림 예수님께서는 아내가 없으셨고 이 예언은 분명 속히 될 일에 대한 계시이므로 요한계시록의 어린양은 바로 재림 예수님을 뜻하며 어린양의 아내란 재림 예수님의 신부가 된다(요한계시록 1:1). 해서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성령과 신부’라고도 표현하고 있다. 그 어린양의 아내를 요한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기록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예루살렘’은 누구를 의미하고 있을까.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그렇다. 요한계시록의 ‘성령과 신부’는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시다. 요한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성령시대 구원자로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수를 통해 영생을 허락하시는 계시를 기록했던 것이다.

② 교단
성경의 말씀대로 ‘신부’이신 하늘 어머니를 믿고 따르는 교단은 오직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유일하다.

③ 결론
어린양의 아내, 성령과 신부를 통해 하늘 아버지와 함께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도 성도들은 신부가 아닌 ‘청함을 입은 자들’ 즉 하객으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복음 22:1~14)

이와 함께 예수님 자신을 ‘신랑’으로, 성도들을 ‘혼인집 손님들’로 비유하신 말씀도 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가복음 2:19~20)

이로 보건대 성도들은 ‘신부’가 아닌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손님’이다. 특히 요한은 계시록을 통해 신부가 예비된 혼인잔치에서 신부와 성도의 차이가 확실히 다름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요한계시록 19:7~9)

어린양의 아내인 신부는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전에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있다. 요한은 성도들을 이 세마포로 표현했다. 실지로 결혼식을 올릴 때 신부는 드레스와 예쁜 장식물을 하고 있다. 이때, 신부와 장식물을 통틀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지 신부의 장식물만 가지고 아름다움을 논하지는 않는다. 성도는 장식물과 같다. 신부이신 하늘 어머니의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처럼 아름다운 행실로 하늘 어머니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성도들이다. 그런 성도들로서 자신의 영광을 하나님보다 더 앞세울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은 어린양의 아내이신 신부, 곧 하늘 어머니의 존재와 하늘 어머니의 영광을 위해 옳은 행실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성도들이 초대를 받아 즐겁게 천국잔치에 들어가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신부’는 때로는 ‘성도’로도 해석이 되지만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신부’는 구원자이신 ‘하늘 어머니’를 뜻한다.
 
 
 
 
성령과신부께서 함께하는 하나님의교회 ^ ^
 
 
출처_패스티브
 
 
 

2014년 8월 12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 아직도 금시초문???!

어머니하나님을 전하는 하나님의교회
 
금시초문과 하늘어머니의 존재
 


누구나 한번쯤은 ‘금시초문’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이를 ‘바로 지금 처음으로 들음’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갑자기 처음 듣는 충격적인 내용을 접하는 경우,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 것입니다. 그러나 충격적인 내용에 대한 완벽한 증거가 있고 확인된 사실이라면,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더라도 차차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이 때문에 생겨났나 봅니다. 그만큼 상식 밖의 진실을 수용하고 이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지요. 일례로 천동설이 널리 보편화되고 상식화되어 있을 때, 과학적으로 지동설을 증명했던 코페르니쿠스, 브루노, 갈릴레오 같은 사람들은 기득권층에 의해 이단 취급을 당하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당시 지동설은 상당한 충격이었고, ‘처음 들어본’ 금시초문의 이론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보다 더한 금시초문의 일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에는 여자의 형상, 즉 어머니 하나님도 존재한다는 내용입니다. 교회를 수십 년 이상 다녔어도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 들어볼 길 없는 교인들에게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금시초문’의 내용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오직 위(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성경은 우리 영혼의 ‘어머니’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엘로힘’ 즉 복수명사로 표현한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버젓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거나 성경으로 확인하지도 않고 남의 말만 듣고 거부한다면 이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겠습니까.

 
성경보다 목사님의 말을 믿는 것은 결국 하나님보다 목사님을 더 따르는 것입니다. 더욱이 성경의 증거를 보고도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멸시하는 것이며 알 권리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이제는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가 생소해서, 혹은 처음 들어본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고, 금시초문일지라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구원자,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믿으시길 바랍니다.

2014년 8월 7일 목요일

생명수의 근원, 성령과 신부가 함께하는 하나님의교회 (아버지 안상홍님 하늘어머니)

 
생명수의 근원, 성령과 신부
아버지 안상홍님 하늘어머니를 믿는 하나님의교회 ^^
 



성경에서 생명수는 영생을 주는 생명의 진리를 말한다(아모스 8:11). 생명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 성부시대 생명수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예레미야 17:13)

그런데 성자시대는 생명수의 근원이 예수님이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한복음 4:10)

그렇다면 마지막 성령시대 생명수의 근원은 누구신가.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성부시대와 성자시대는 생명수의 근원이 오직 한 분이었지만 성령시대에는 성령과 신부, 두 분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신부는 누구신가. 신부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성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명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줄 수 있다.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7~8)

값없이 생명수를 주시는 분은 우리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2장 17절의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가 성도라는 주장은 그릇된 주장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는 누구인가.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는 어린양의 아내이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하늘 예루살렘은 우리 어머니라고 증거하였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성령시대에는 성령과 신부, 곧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생명수를 주신다. 어머니 하나님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분이 아니다. 성경은 창세기 1장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남자와 여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에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증거다. 그리고 성경은 마지막 때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성령과 신부로 나타나 생명수를 주신다고 예언하였다. 성령과 신부께서 생명수를 주시는 지금 이 시대에 성령과 신부를 알지 못하는 교회는 당연히 생명수가 없다.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의 예언대로 임하신 성령과 신부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으며 생명수, 즉 영생의 진리를 전파하고 있다.



 
 
 
출처_하나님의교회 http://www.watv.org/ , 패스티브
 
 
 
         


2014년 7월 15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 어머니 하나님 [생명수를 받으라]

생명수를 받으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물은 생명체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우리 인체는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물의 1~2%만 부족해도 심한 갈증을 느끼며 12%가 부족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니 물을 두고 생명 그 자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는 우리 영혼에도 적용되는 진리다. 영혼의 생명인 영생도 생명수가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수가 없다면 우리 영혼도 심한 갈증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의 생명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아모스 8:11~13)

우리 영혼에 필요한 생명수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 시대가 하나님의 진리인 생명수를 구하지만 얻을 수 없어 영혼이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음을 예언하고 있다. 과연 생명수는 어디에서 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 생명수를 주시는 주체가 누구인지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요한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밧모섬이라는 곳에서 계시를 받았다. 천사가 모여준 미래에 대한 일들 속에서 그는 성령과 신부가 생명수를 받으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성령과 신부는 누구일까. 성령은 성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한 분이시다. 생명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기에 이 시대 성령께서 오셔서 생명수를 주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7~8)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 옆에서 함께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는 어떤 존재일까. 생명수를 베푸시는 주체를 알지 못하고서는 생명수를 받을 수 없기에 ‘신부’에 대한 문제만큼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도 요한도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요한은 신부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 했다. 이는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낡은 성벽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과연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인 예루살렘은 누구인가?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그렇다. 생명수를 주시는 성령과 신부는 곧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시다. 성령 혼자만이 아닌 성령과 신부께서 함께 생명수를 주신다는 것은 이 시대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생명수를 받기 위해 하늘 아버지와 더불어 하늘 어머니를 믿어야 함을 뜻한다. 이와 함께 구약시대 많은 선지자들도 예루살렘인 하늘 어머니께서 생명수를 주실 것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스가랴 14:8)

실지로 어떤 건물에서 물이 솟아난다면 큰 문제다. 아마도 기초공사부터 다시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스가랴 선지자는 생명수가 예루살렘성에서 솟아나 동서로 흐를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다. 이는 실지 성전이 아닌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로부터 시작된 생명수가 사시사철 쉼없이 흘러 넘칠 것에 대한 예언이다. 이렇게 시작된 생명수는 더욱 그 양이 많아져 동서뿐 아니라 전 세계로 흐를 것을 에스겔 선지자도 예언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에스겔 47:1~5)

처음에는 발목에 오르던 생명수가 멀리 흘러갈수록 무릎, 허리까지 차 올라 나중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이는 생명수인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에는 작게 시작됐지만 마침내는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점점 더 왕성하게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 시발점이 바로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생명수라야 전 세계로 흘러간다. 세상의 다른 유명한 신학자나 성경 연구가가 아닌 오직 하늘 어머니라야 가능한 예언이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에스겔 47:12)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로부터 흘러 넘친 생명수는 결국 강이 되고 그 강 좌우에는 달마다 새 실과를 맺는 생명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는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은 시대를 뛰어넘어 요한계시록으로 이어진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요한계시록 22:1~5)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생명수가 솟아난다고 예언한 반면, 사도 요한은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예언도 성령의 신부 되신 하늘 어머니께서 생명수를 주신다는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어린양의 보좌’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예레미야 3:17)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보좌, 즉 어린양의 보좌가 예루살렘이라고 증거했다. 다시 말해 사도 요한이 기록한 ‘어린양의 보좌’는 ‘하늘 어머니’를 뜻하는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가 본, 달마다 새 실과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는 생명강이 예루살렘에서 흘러 넘치는 모습은, 어린양의 보좌에서 생명강이 흘러나오는 것을 기록한 요한의 계시와 같다. 이는 성경 전반에 걸쳐 우리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생명수는 오직 어머니 하나님을 통해 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은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받은 자들만이 하늘나라에서 세세토록 왕노릇하는 모습을 보았다. 누구라도 생명수를 받지 못한다면 영생도, 구원도, 천국도, 천국의 영광과 축복도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 심한 갈증을 느끼는 이 시대 하늘 어머니께서는 지금 이 시간도 말씀하고 계신다.
“오라! 누구든지 와서 생명수를 받으라.”

출처_패스티브

2014년 7월 9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 생각찬글 (어머니의 밥상)

 
하나님의교회 생각찬글 [어머니의 밥상]
 

아모스 8장 11절~13절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영적 기갈에 들려있는 인류 인생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하고 있는 새언약유월절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지켜 행하는 하나님의교회~
 
이사야 55장 2절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안상홍하나님 어머니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기름진 생명의 말씀이 있는 하나님의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