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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8일 일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예수님의 메시지]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예수님의 메시지]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주 인용하거나 암송하는 성경구절 중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로마서 10:17). 공동번역에는 “그러므로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NIV 영어성경에는 “Consequently,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and the message is heard through the word of Christ.”로 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번역하여 이해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메시지를 들음으로써 생기는 것이고, 그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듣는 것이라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불어넣는 각종 메시지를 누구한테서 받고 있을까요? 설마 ‘우리 목사님’이나 일개 ‘교단’의 메시지는 아니길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메시지만이 아무런 점도 흠도 없을 것이며 진정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경을 통해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문자메시지나 음성메시지를 직접 보거나 읽거나 듣고 깨달아야 제대로 된 믿음이 생기는 것이지, 사람의 말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왕골이 진펄이 아니고 나겠으며 갈대가 물 없이 자라겠느냐 (욥기 8:11)

왕골이나 갈대는 진펄이나 습지에서 왕성하게 자랍니다. 물기가 없는 곳에서는 왕골이나 갈대를 볼 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벼나 미나리도 물기가 없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양들이 좋아하는 것은 목자가 주는 향긋한 풀입니다. 이리의 몸에서는 비릿한 고기냄새만 날 뿐입니다. 우리 영혼도 생명수, 즉 하나님의 말씀을 흡수하지 않고는 결코 소성함을 얻을 수 없고 견고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최후에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 굳건한 믿음은 어디에서 생길까요? 그냥 아무 데나 가서 믿기만 하면 될까요? 생명수를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구원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그의 아내가 주시는 생명수를 받아야 영혼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아내는 누구겠습니까? 바로 어머니입니다.

오직 위(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우리 영혼의 목자이시며 성령과 신부이신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로부터 생명수를 공급받아야 진정한 믿음을 갖게 될 것이며, 영생복락을 약속받게 될 것입니다.
 
출처_패스티브

2014년 10월 20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성령의 신부는 누구인가]

성령의 신부는 누구인가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밧모섬에서 유배 중이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로 성령시대의 구원자에 대한 예언을 기록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과 신부로부터 시작되는 구원의 메시지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교계에서는 이 성구의 ‘신부’ 존재를 놓고 갑론을박하며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교리비교를 통해 과연 ‘신부’는 누구를 의미하는지 살펴보자.

신부는 성도다

① 근거
기성교단에서는 요한의 계시 속에 드러난 ‘신부’를 성도라고 말한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둔 신부’라는 근거는 성경의 이 말씀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린도후서 11:2)

사도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서신에서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 한다’고 기록했다. 남편이신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정결한 처녀는 당연히 ‘신부’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신부’라는 단어는 성도를 뜻한다고 여긴다.

② 교단
신부를 성도라고 믿는 교단은 모든 기독교 및 소종파인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 여호와의증인 등이 있으며, 천주교에서는 신부를 말 그대로 주교 다음 가는 성직자인 신부(神父)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③ 결론
성경에 기록된 ‘신부’가 ‘성도’라고 해석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신부’를 오직 ‘성도’라고만 해석한다면 오류에 빠지고 만다. 성경의 전후 문맥을 잘 살펴서 그 의미를 파악하지 않고 단편적으로만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뜻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양’에 대해 살펴보자. 성경에서 양(羊)은 통상적으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를 말한다. 그렇다고 성경의 모든 ‘양’을 성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적인 의미를 잘 모르고 단편적으로만 본다면 억지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부’가 ‘성도’라는 해석도 단편적 시선에 불과하다. 요한계시록 22장에 성령과 함께 등장하는 ‘신부’가 ‘성도’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같은 구절에도 잘 드러나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께서 주시는 것은 ‘생명수’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주시는 생명수는 오직 구원자께서만 베푸실 수 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5~7)

‘보좌에 앉으신 이’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목마른 자들에게 생명수를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생명수를 주시는 ‘성령과 신부’는 다름 아닌 구원자가 된다. 성령만이 구원자가 아니라 ‘신부’ 또한 구원자로 오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니 ‘신부’는 오직 ‘성도’로만 해석된다는 주장은 비성경적 주장이다.

성도는 생명수를 받는 존재이지 결코 생명수를 주는 존재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는 구원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지 구원을 베풀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신부’를 ‘성도’라고만 해석한다면 성도 자신들이 하나님이라는 셈이 된다.

신부는 하늘 어머니다

① 근거
요한계시록 22장에 성령과 함께 나타난 신부는 하늘 어머니다. 요한은 21장에서 천사가 보여준 신부의 존재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신부는 곧 어린양의 아내다. 성경의 ‘어린양’은 예수님이다(요한복음 1:29). 그러니 ‘어린양의 아내’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아내’를 의미한다. 하지만 초림 예수님께서는 아내가 없으셨고 이 예언은 분명 속히 될 일에 대한 계시이므로 요한계시록의 어린양은 바로 재림 예수님을 뜻하며 어린양의 아내란 재림 예수님의 신부가 된다(요한계시록 1:1). 해서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성령과 신부’라고도 표현하고 있다. 그 어린양의 아내를 요한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기록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예루살렘’은 누구를 의미하고 있을까.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그렇다. 요한계시록의 ‘성령과 신부’는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시다. 요한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성령시대 구원자로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수를 통해 영생을 허락하시는 계시를 기록했던 것이다.

② 교단
성경의 말씀대로 ‘신부’이신 하늘 어머니를 믿고 따르는 교단은 오직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유일하다.

③ 결론
어린양의 아내, 성령과 신부를 통해 하늘 아버지와 함께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도 성도들은 신부가 아닌 ‘청함을 입은 자들’ 즉 하객으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복음 22:1~14)

이와 함께 예수님 자신을 ‘신랑’으로, 성도들을 ‘혼인집 손님들’로 비유하신 말씀도 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가복음 2:19~20)

이로 보건대 성도들은 ‘신부’가 아닌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손님’이다. 특히 요한은 계시록을 통해 신부가 예비된 혼인잔치에서 신부와 성도의 차이가 확실히 다름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요한계시록 19:7~9)

어린양의 아내인 신부는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전에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있다. 요한은 성도들을 이 세마포로 표현했다. 실지로 결혼식을 올릴 때 신부는 드레스와 예쁜 장식물을 하고 있다. 이때, 신부와 장식물을 통틀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지 신부의 장식물만 가지고 아름다움을 논하지는 않는다. 성도는 장식물과 같다. 신부이신 하늘 어머니의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처럼 아름다운 행실로 하늘 어머니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성도들이다. 그런 성도들로서 자신의 영광을 하나님보다 더 앞세울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은 어린양의 아내이신 신부, 곧 하늘 어머니의 존재와 하늘 어머니의 영광을 위해 옳은 행실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성도들이 초대를 받아 즐겁게 천국잔치에 들어가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신부’는 때로는 ‘성도’로도 해석이 되지만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신부’는 구원자이신 ‘하늘 어머니’를 뜻한다.
 
 
 
 
성령과신부께서 함께하는 하나님의교회 ^ ^
 
 
출처_패스티브
 
 
 

2014년 9월 16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사과가 열린나무]

 사과가 열린 나무



성경 공부를 하다 보면 가끔 “안식일이나 유월절은 정말 확실한데 새 이름과 어머니 하나님은 믿기 힘들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곤 합니다. 그러면 그분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안식일과 유월절이 영생의 길이라는 것은 정말 확실한가요?”
만약 안식일이나 유월절을 확실하게 인정한다면 다음 성경 말씀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13~20)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멸망으로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를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거짓 선지자를 어떻게 구별하라고 하셨습니까?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울 때는 그 열매로 구별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이치를 들어,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할 때 그 열매를 보면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되는 열매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다 하더라도 ‘불법’이라는 열매를 맺고 있다면 그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거짓 선지자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 하는 것이 바로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판단하는 열매인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길에 대해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유월절이라는 법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법이 확실한가요? 그렇다면 일요일 예배나 크리스마스는 어떤가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법인가요, 아니면 불법인가요? 일요일 예배나 크리스마스가 사람이 만든 사람의 계명이요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 불법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그리고 유월절이 예수님께서 지키라 하신 하나님의 생명의 법이 확실하다면, 유월절이라는 열매를 맺고 있는 안상홍님과 어머니는 과연 어떤 나무일까요? 열매인 유월절은 생명과가 맞는데 그 나무가 생명나무라는 것이 믿기가 힘든 것인가요?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이요 나쁜 열매가 맺힌 이유는 그 나무가 나쁜 나무이기 때문이다.”

열매는 사과가 틀림없습니다. 이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요? 사과가 맺혔으니 이 나무가 사과나무가 된 것일까요, 아니면 나무가 원래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가 열린 것일까요? 안상홍님과 어머니께서 참 선지자가 아니라면 결코 생명과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생명과는 반드시 생명나무에서만 열린다는 것이 예수님께서 증거하신 진리입니다.

안식일과 유월절은 분명한 생명의 진리인가요? 그렇다면 확실하게 믿으셔도 좋습니다. 안식일과 유월절을 알려주신 안상홍님과 어머니는 생명나무이신 성령과 신부, 하나님이십니다.

출처_패스티브

2014년 8월 7일 목요일

생명수의 근원, 성령과 신부가 함께하는 하나님의교회 (아버지 안상홍님 하늘어머니)

 
생명수의 근원, 성령과 신부
아버지 안상홍님 하늘어머니를 믿는 하나님의교회 ^^
 



성경에서 생명수는 영생을 주는 생명의 진리를 말한다(아모스 8:11). 생명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 성부시대 생명수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예레미야 17:13)

그런데 성자시대는 생명수의 근원이 예수님이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한복음 4:10)

그렇다면 마지막 성령시대 생명수의 근원은 누구신가.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성부시대와 성자시대는 생명수의 근원이 오직 한 분이었지만 성령시대에는 성령과 신부, 두 분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신부는 누구신가. 신부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성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명수는 오직 하나님만이 줄 수 있다.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7~8)

값없이 생명수를 주시는 분은 우리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2장 17절의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가 성도라는 주장은 그릇된 주장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는 누구인가.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는 어린양의 아내이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하늘 예루살렘은 우리 어머니라고 증거하였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성령시대에는 성령과 신부, 곧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생명수를 주신다. 어머니 하나님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분이 아니다. 성경은 창세기 1장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남자와 여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에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증거다. 그리고 성경은 마지막 때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성령과 신부로 나타나 생명수를 주신다고 예언하였다. 성령과 신부께서 생명수를 주시는 지금 이 시대에 성령과 신부를 알지 못하는 교회는 당연히 생명수가 없다. 하나님의교회는 성경의 예언대로 임하신 성령과 신부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으며 생명수, 즉 영생의 진리를 전파하고 있다.



 
 
 
출처_하나님의교회 http://www.watv.org/ , 패스티브
 
 
 
         


2014년 7월 17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 엘로힘 [어머니하나님]


[ 어머니 하나님 ]
 
하나님은 두 분이다.
성경은 심해와 같다. 깊고 오묘한 수수께끼의 연속이다.
수수께끼는 성경 첫 장부터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우리’라는 하나님이다. 아니, ‘하나님들’이다.
 
 
 
구약성경의 원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나님’이 복수명사 ‘אֱלֹהִים (엘로힘)’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들’로 해석되는 이 표현은 구약성경 39권에 걸쳐 2500회 이상 등장한다.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엘로힘’이라는 이 수수께끼 같은 단어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하나님들,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사람의 형상을 통해 당신을 왜 복수의 하나님으로 표현했는지 알려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모델로 하여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이는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과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 두 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두 분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사역을 하시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속에서도 한 분이 아닌 두 분,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은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항상 두 분의 하나님이 역사하셨음을 ‘엘로힘’과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1:1~7)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8)


오만한 인간들의 바벨탑 건설을 중단시키시는 역사를 행하시는 분도 두 분이다.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찾으시는 분도 한 분이 아니다. 이는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이 늘 두 분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다.

하늘 가족의 대표, 아버지 하나님
대개는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요한복음 8:41)”,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에베소서 4:5~6)” 하신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아버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뜻이지, 하나님이 유일신이기 때문에 한 분만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아버지 하나님은 유일하게 한 분이라는 말씀이다. 다른 어떤 신도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한 분뿐”이라고 하신 것은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반증이다.


하나님은 분명 두 분이신데, 성경은 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고 표현한 것일까.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대표성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을지라도 가족의 대표인 아버지의 이름만 적어 문패를 거는 이치와 같다. 누구나 아버지의 이름이 갖는 대표성 때문에 그 집에 아버지 혼자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어머니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늘 가족에도 이처럼 대표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다.

또 다른 예로, 아담과 하와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성경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로마서 5:12~19). 즉,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은 사람은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두 사람인데도 ‘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담이 갖는 대표성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하와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하신 말씀을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하여 곡해한 것이다.

엘로힘, 성령과 신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장면은 성경 전반에 걸쳐 담겨 있다. 다음은 성경 마지막 장에 묘사된 두 분의 구원자에 대한 기록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하나님께서 성령과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예언이다.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이다. 신부(bride)는 말 그대로 성령의 아내이니 ‘어머니 하나님’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과 신부는 창조 시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시며 인류를 창조하신 엘로힘,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다.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기 위해 마지막 성령시대에 이 땅에 오셨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일은 아버지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출처_패스티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