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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4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증거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증거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미국 범죄수사 드라마 ‘CSI’의 유명한 대사 가운데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미궁에 빠졌던 사건이라도 증거만 확보되면 진실이 밝혀지게 마련이고 그에 따른 법적 처분을 받게 된다.
 
결정적인 증거는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사람을 석방시키기도 하며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을 구속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또한 법관이 진실을 판단할 수 있도록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준다.
 
최근에는 사이버 범죄가 증가함에 따라 방문, 탐문 수사 같은 전통적 방식으로는 범죄 단서, 즉 증거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한 경찰청 범죄정보지원계 소속 프로파일러는 “범인은 반드시 범죄현장을 다시 찾아온다는 속설은 이미 깨졌다”며 이유 중 하나로 인터넷의 발달을 들었다.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 인터넷, SNS 등 디지털 기기와 항상 접해 있어 상당 부분 개인에 대한 기록이 디지털 정보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사이버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포렌식’은 바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디지털 데이터, 통화기록, 문자메시지 내역 등의 정보를 수집하여 지문, 핏자국 등 범행과 관련된 증거를 확보해주는 수사기법이다. 심지어 범행을 숨기기 위해 삭제한 자료까지 복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것이라고 한다.
 
2007년 학력위조사건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어느 유명 대학교수가 고위직 인사에게 보낸, 삭제된 100여 개의 연서 메일을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복구했고, 세월호 사고 당시 휴대폰 대화 내용을 복원해 수사에 결정적인 단서들을 제공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사자가 아무리 발뺌을 하더라도 확실한 ‘증거’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어떤 변명으로도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증거들을 남기게 된다. 성경은 우리의 영혼이 이 땅에서 어떤 증거를 남겼느냐에 따라 구원과 형벌이 결정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0:11~12)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권세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인생의 수한이 다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이 땅에서 자신이 남긴 증거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증거는 무엇일까.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일서 5:11~12)
 
영원한 생명,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반드시 남겨야 할 증거인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최종적으로 구원받는 무리에 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수한이 한정적인 우리들로서 무슨 수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한복음 6:53~54)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7~20)
 
영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새 언약 유월절이 특별한 것이다.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훗날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웃을 수 있도록 ‘새 언약 유월절’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남기는 것은 어떠한가. 그리고 당당하게 천국에 들어가자.

<참고자료>
'디지털 포렌식', 시사상식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32202&cid=43667&categoryId=43667
 
출처_패스티브
 
 

2015년 7월 29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황금 레시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황금 레시피]



요즘 TV에서는 많은 요리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 예전에는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위주의 방송을 했다면 지금은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먹는 프로그램이 대세다. 대세를 따라 여러 방송사에서는 요리 프로그램을 편성했고, 대부분의 요리 프로그램들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한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유명 셰프를 앞세웠다. 출연자의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로 가져와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으로 출연자가 원하는 요리를 주어진 시간 안에 근사하게 만들어낸다. 또 요리에 뜻을 둔 일반인들이 출연해서 요리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도 있다. 심사위원이 제시하는 미션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지를 평가하여 우승자에게는 큰 상금과 혜택이 주어진다.

또 다른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맛집을 찾아가 맛의 비결을 ‘황금 레시피’라는 명칭으로 소개한다. 재료 손질부터 양념장의 황금비율, 조리법까지 상세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누구든지 맛집의 요리를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주부들의 집밥 고민을 덜어주는 한 요리 프로그램은 방송 후는 물론 꾸준히 인기검색어에 등장하면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의 재료들로 간단하고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비법들을 알려주기 때문에 주부들뿐 아니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번쯤 따라해보고 싶은 레시피라고 한다.

이러한 요리 프로그램들이 인기에 힘입어 방송에서 사용된 재료들은 불티나게 팔리기도 하고, 인터넷에서는 ○○○ 황금레시피, ○○○ 맛있게 만드는 법 등 먹고 싶은 음식의 레시피와 요리된 사진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레시피대로만 한다면 대부분 성공적인 요리를 할 수 있지만 레시피에서 재료가 몇 가지 빠진다거나 과정을 건너뛰게 되면 그 맛은 보장할 수 없다. 소개된 레시피에는 음식의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 재료와 양념들의 황금비율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관심은 비단 최근에 와서 높아진 것은 아니다. 인류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다. 우리 몸은 필요한 영양분들이 고루 섭취되고, 음식을 통해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필수적인 ‘먹는’ 문제는 우리의 영혼이 영원히 ‘사는’ 문제로 이어진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한복음 6:53~55)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잠시 잠깐 살아가는 삶보다는 영원히 살아갈 천국의 삶에 대한 준비를 강조하셨다(요한복음 6:63). 사람들이 살기 위해 무언가 먹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천국에서 살기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살과 피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먹는’ 것으로 영원히 ‘사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9~28)

천국 가는 황금 레시피는 새 언약 유월절이다. 유월절에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가 천국에 가는 확실한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황금 레시피를 무시하고 일요일 예배나 크리스마스 등의 불순물을 넣거나 유월절을 빼버리게 되면 천국은 기대할 수 없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


하나님의 레시피는 어렵지 않다. 천국 가는 황금 레시피, 유월절은 이미 모두에게 제공되었다. 누구든지 천국에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레시피대로 유월절을 지켜보자. 그러면 천국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다.



2015년 2월 1일 일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피노키오증후군]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피노키오증후군]


최근 모 방송사에서 종영한 드라마 ‘피노키오’는 43명 중 1명꼴로 거짓말을 하면 반사적으로 딸꾹질을 하는 가상의 ‘피노키오증후군’을 소재로 삼았다. 이 드라마는 동화 속 피노키오처럼 거짓말을 하면 바로 티가 나기 때문에 참말만 하며 살아야 하는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이 수습기자가 되면서 진정한 기자로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형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엄마가 상류층의 압력과 욕심으로 여론몰이를 하여 친구의 가정을 파탄 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엄마가 언론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등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현실과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진실을 선택한다.


기자로서의 사명을 저버리지 않고 진실을 고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퍽 인상적이다. 그들은 “기자의 거짓말은 대중의 눈을 멀게 할 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진실만을 보도해야 한다”며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거짓은 그들에게 있어 체질적으로 맞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그들의 세상은 정의와 진실이 살아 꿈틀거리고, 불의와 거짓은 맥을 못 춘다. 누구나 꿈꾸는 세상이다.


언론인이라면 마땅히 진실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어떤 사건에 대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진실만을 보도해야 한다. 드라마 ‘피노키오’는 여기에 하나 더 중요한 물음표를 던진다. 언론을 접하는 대중들도 ‘진실을 꿰뚫어보는 눈’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사고들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론몰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진실을 꿰뚫어보는 눈일 것이다.


2천 년 전 실제로 ‘피노키오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진실만을 말하고 진실을 가려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진실을 본 이상 거짓은 말할 수 없었고, 따를 수 없었다. 그들이 진실을 버렸다면 그들의 삶은 편안했을 테지만 체질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차라리 고난을 택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한복음 10:27)


영적 피노키오들은 로마의 거센 핍박을 받고도 죽음을 불사했다. 하나님의 진리가 사람에 의해 변질되기 시작했을 때도 그들은 진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지킨 유월절을 폐지했을 때 그들은 목숨을 던져 유월절을 고수했다.


“우리는 진정 올바르게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아무것도 덧붙이거나 감하지 않았습니다. … 이 사람들은 모두 조금도 빗나가지 않고 신앙의 규칙을 따르면서 복음에 따라 14일을 유월절로 지켰습니다. … 모든 성서를 연구해온 나는 나를 협박하기 위해 취해지는 모든 일에 전혀 놀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보다 훨씬 위대한 사람들은 ‘우리는 사람에게 순종하기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은성출판사, 294~295쪽)


목숨을 버릴지언정 거짓을 따르지 않았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당시에는 손해를 본 것 같았으나 그들은 천국의 축복을 받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 시대 우리는 어떠한 신앙의 길을 걸어야 할까.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진실의 길을 선택한 멋진 피노키오가 되어보면 어떨까.


출처_패스티브

2014년 10월 13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성령을 받으려면]

성령을 받으려면
하나님말씀대로 순종하는 하나님의교회




2,000년 전 예수님을 믿었던 사도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다. 그 성령의 역사로 사도들은 방언을 하며 복음을 전파하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성령의 역사는 실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오늘날 신앙의 길을 가는 우리들도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구하고 있다. 해서 하나님을 진실되게 믿는다고 하는 신앙인들은 성령을 받기 위해 부흥회나 유명 목사의 집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2,000년 전 사도들이 성령 받은 것은 떠들썩한 부흥회나 유명 목사의 집회가 아니었다. 단 한 가지 조건, 그것이 완벽했을 때 성령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사도행전 5:32)


성령 받는 조건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어떤 이유나 변명, 자신의 생각을 배제한 말 그대로 ‘순종’이다. 이러한 순종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성령의 임재도 없다. 이스라엘의 제1대 왕이었던 사울도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아 결국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들어갔던 역사가 있었다. 이를 반추해 볼 때, 우리는 과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지 스스로 신앙의 길을 돌아보아야 한다(사무엘상 15:1~31).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무엘상 16:14)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은 결과는 비참했다. 불순종의 말로는 성령이 떠남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지 못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사울의 역사를 교훈 삼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성령의 임재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기성교단들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안식일, 3차 7개의 절기 등 어느 것 하나 지키지 않고 있음에도 순종을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명하신 가을 절기인 초막절도 지키지 않으면서 사람의 계명인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기성교단들의 행태를 과연 ‘순종’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성령을 받고자 한다면 지나친 착각일 것이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스가랴 14:16~19)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는 결코 성령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신은 떠나갈 것이며 악령의 역사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출처_패스티브

2014년 7월 23일 수요일

천국을 준비하는 하나님의교회

 
완벽한 준비
 


요즘 캠핑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일상을 떠나 자연과 더불어 힐링하기 위한 사람들의 선택이다. 이제 캠핑은 여름만이 가지고 있는 전유물이 아니다. 사계절 내내 사람들은 캠핑을 위해 떠난다. 텐트, 배낭, 침낭, 코펠, 버너에서부터 자질구레한 생활용품까지, 떠나기 위한 준비물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도 막상 도착하면 준비하지 못한 물건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아! 맞다. 안 가지고 왔네!” 하는 탄식은 곧 주머니를 털게 만든다.

우리 인생에 있어 철저한 준비는 비단 캠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과연 인생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준비를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을까. 나의 길을 마치고 또 다른 여정을 떠날 때가 되면 과연 모든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리고 이런 준비들은 어느 시점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6~8)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롤모델이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그의 제자였던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새롭게 시작되는 천국에서의 삶을 위해 얼마나 완벽하게 준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그동안 지켜왔던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명 천국에서 의의 면류관이 예비돼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 또한 이러한 삶을 살았을 때 비로소 천국을 위한 준비를 마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떠한 믿음을 지켰을까. 그가 유대교로부터 하나님의교회로 회심한 뒤 고집스럽게 지켜왔던 하나님의 말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6)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사도행전 17:2)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사도행전 20:16)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고린도전서 11:13)

끊임없이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모든 열정을 불태웠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대로 그 계명을 끝까지 지켰다. 유월절, 안식일, 오순절, 여성도의 머리수건 등 유대인들의 힐난과 핍박은 고사하고 전도여행 중에 만난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이방 사람들에게 받은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등 셀 수 없는 위험 속에서도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왔다. 해서 바울은 자신이 있었다. 분명 자신이 이생에서의 생을 마치고 천국에 가게 되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의의 면류관을 받으리라고 확신했다.

천국을 위한 준비가 이처럼 완벽할 수 있을까.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훗날 인생의 여정을 마치고 천국으로의 여행을 시작할 때면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행했던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빠진다면 천국 문 앞에서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어떻게 하죠? 그걸 몰랐네요.”
그러나 이미 때는 늦으리라.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벧후 1:4~11절- 
 
 
 
출처_패스티브

 

2014년 7월 14일 월요일

오만과편견

 
오만과 편견
 
 
 
오만 [傲慢,Oman] 방자하고 잘난 체하여 건방지다  

편견 [偏見]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하지 못한 생각이나 견해  
 
 


2천 년 전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면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라며 예수님을 조롱하고 배척했다. 그들은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나실 수가 있겠는가?’ 하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창세기 18장 14절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는 말씀의 배경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편협한 인간의 사고로는 하나님의 능력과 전능하심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증명해주고 있다.



믿음이란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신 유명한 선지자의 말씀이 생각난다. 과연 하나님은 사람이 되면 안 되는 것일까? 성육신이 한 번은 가능하지만 두 번은 불가능할까? 이 땅에 성육신하실 때 오실 시기나 장소, 이유 등에 대해서 UN이나 교황청의 승인을 받고 오셔야만 할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허락 없이는 이 땅에 오실 수 없는 무력함을 드러내셔야만 직성이 풀릴까? 전능의 의미를 이론적으로만 이해할 뿐 실제로는 거부하고 불신하는 인간적 오만과 한계를 느낀다.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을 베푸실 목적으로 이 땅에 재림하시는 하나님께서 남성, 여성, 국적 등 어떤 성향과 모습으로 오셔야 할지 감히 인생들이 이런저런 조건을 내걸고 따질 수는 없는 일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시든 광명한 천사로 오시든 후진국이나 초라한 목수 집안에서 태어나시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결정하실 일이지 인간들이 개입하여 조언하거나 결정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왈가왈부하는 것은 애당초 구원과는 아무 상관없는 풀벌레들의 합창소리 정도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디모데전서 2:4~6)


출처_패스티브

2014년 7월 13일 일요일

하나님의교회 역사

[ 하나님의교회 역사 ]

하나님의 피로 세운 교회 하나님의교회

국내에 설립된 교회는 약 6만여 곳이다.
이 많은 교회들 중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는 어디일까.



국내에 설립된 교회 수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천주교, 성공회 등을 합쳐 약 6만개 정도다. 이는 소종파를 제외한 수치다. 다시 말해, 십자가를 세우고 교회로 운영하는 곳만 6만여 곳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통계연보에 의하면 국내 총 가구수는 대략 1,800만 가구라고 한다. 그렇다면 300가구당 하나는 교회라는 얘기다. 이는 평균적인 수치고 밀집도는 다르다. 100가구도 안 되는 작은 마을에 두세 개의 교회가 존재하는 곳도 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러한 결과를 예언으로 보이셨다.


최후의 만찬[출처: 필립 뉴 샹페뉴作 17세기경]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예레미야 2:28)


이렇게 많은 교회 중 우리의 영혼을 의탁해 천국으로 이끌어줄 교회를 발견한다는 건 어찌 보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만큼 힘든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바라시기에 성경을 통해 당신께서 세우신 교회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셨다. 그렇다. 성경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교회가 등장한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이 장면은 사도 바울이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는 모습이다. 성도들의 교육과 믿음의 성장을 걱정했던 바울은 자신이 떠난 뒤에라도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올바로 지켜나가길 강조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내용 가운데 하나의 ‘교회’를 언급했다. 그 교회는 초대 사도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던 기독교인들이 다녔던 교회다. 로마의 압제와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켜나갔던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다’는 뜻은 ‘하나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다’(표준새번역)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피로 교회를 세울 수 있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 공동번역 성경을 통해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여러분은 늘 자신을 살피며 성령께서 맡겨 주신 양떼들을 잘 돌보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값을 치르고 얻으신 당신의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공동번역 사도행전 20:28)


즉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대가를 치르고 세우신 교회다. 그러므로 피로 세워진 교회는 당연 하나님의 소유다. 교회가 하나님께서 직접 피의 대가를 지불하고 세워졌다면 이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피’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그 증거를 확신할 수 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8)


예수님께서 ‘나의 피’라고 말씀하신 ‘이것’은 바로 유월절의 포도주다. 유월절 성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떡이 당신의 몸이며, 포도주가 당신의 피임을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는 ‘유월절’이라는 진리가 있어야 한다. 유월절 진리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니다. 이는 오늘날 세워진 6만 개의 교회가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라는 결론이다. ‘하나님의 피’를 의미하는 유월절을 지키고 있지 않으니 당연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될 수 없지 않겠는가. 곧, 아무리 하나님을 부르짖어도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상의 수많은 교회 중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로 세워주신 교회는 어디일까. 우리의 영혼을 의탁하고 천국으로 인도해줄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 그 교회의 이름은 바로 ‘하나님의 교회’라고 성경에서는 알려주고 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고린도전서 1:2)


그리스 남단에 위치한 고린도라는 지역에 ‘하나님의교회’가 있었다. 그 하나님의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사도 바울은 ‘성도’라고 불렀다. 여기에서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지만 에베소에 있는 하나님의교회도 있었고, 갈라디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빌립보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로마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골로새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등이 있었다. 이처럼 초대교회 즉, 초대 하나님의교회 당시에는 소아시아 지방 각 도시마다 ‘하나님의교회’가 존재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신 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럽과 아시아로 전파됐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바울 또한 유대교에서 하나님의교회로 개종한 사례도 있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갈라디아서 1:13)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를 대가로 세우신 교회는 그 이름이 ‘하나님의교회’다. 당연 하나님의교회는 ‘유월절’ 진리를 지킨다. 하나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이다. 6만 개가 넘는 교회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하나님의교회’다. 그러므로 하나님의교회에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초대 하나님의교회 당시 사도들을 핍박했던 유대교 사람들에게 교법사 가말리엘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사도행전 5:38~39)


하나님의교회의 정통성은 그 모든 사상과 소행이 하나님께로 나왔기에 절대 변질될 수도, 흐려질 수도 없다. 온 지구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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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0일 목요일

마지막재앙의 도피처 시온

★마지막재앙의 도피처 시온 하늘어머니께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교회 ★

재앙의 소식과 전쟁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절기로써 구원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유월절 지키는 유일한 하나님의 교회 나오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경고하실 때 항상 구원의 도피처를 알려 주신다.
온 세상을 홍수로 멸한 노아 때에는 노아의 방주가 구원의 도피처였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창세기 6:13~14)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멸할 때는 소알성이 도피처였다.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 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창세기 19:13~22)


이러한 지나간 역사는 마지막 날에 대한 그림자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누가복음 17:26~30)


그렇다면 마지막 재앙의 때 구원의 도피처는 어디일까? 성경은 ‘시온’이라고 예언하였다.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임이니라 (예레미야 4:5~6)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4:1)


시온은 어디인가? 성경에서 시온은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곳이다.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 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이사야 33:20)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지도 않으면서 시온이라 자처하는 것은 성경과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성경대로 새 언약 3차의 7개 절기를 지키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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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7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_하나님의진리

원석에서 다이아몬드로
 
 


다이아몬드(Diamond)는 여러 보석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보석 중 하나다.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체이기도 하다. 다이아몬드는 순수한 탄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탄소 원자가 또 다른 4개의 탄소 원자와 정사면체 형태로 결합되어 있다. 지하 깊은 곳에서 2,000도 이상의 온도와 큰 압력을 받았을 때 생성되며, 지각변동이나 화산의 마그마를 따라서 지층으로 밀려 올라와 사람에게 발견된다.



과거에는 원석을 구하거나 가공하기 힘든 보석인 만큼 왕가나 귀족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면서 ‘왕의 보석’, ‘보석의 왕’ 등으로 불렸다. 하지만 1866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규모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면서 지금은 널리 보급되어 많은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인기 보석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다이아몬드는 승리와 변하지 않는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에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가 결혼 예물로 가장 선호하는 보석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소유하고 싶어하는 최고의 보석 다이아몬드의 원석은 상당히 볼품이 없다.


다이아몬드 하면 보통은 무색 투명하게 반짝이는 모습을 연상하지만, 다이아몬드 원석은 우중충하거나 새까만 돌멩이에 불과하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잘 알아보기 힘들다. 그런 원석이 전문가나 세공업자를 만나면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높아지는 최고의 보석으로 태어난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4C 요인으로 결정된다. 첫째는 투명도(Clarity)다. 다이아몬드를 확대경으로 보았을 때 결점 유무로 그 가치가 결정된다. 무결점 상태의 완벽한 상태부터 육안으로도 결점을 확인할 수 있는 단계까지 총 6개의 등급으로 나뉜다. 무결점 상태일수록 다이아몬드는 더욱 투명해지고 투명할수록 빛을 더 많이 받아들여 아름다운 무지갯빛을 발한다.


둘째는 색상(Color)이다. 불순물 포함 여부에 따라 다이아몬드의 색상이 결정되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색의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가장 높다. 질소나 붕소 같은 불순물이 섞여 있으면 노란색이나 청색의 다이아몬드가 나오는데 이렇게 색이 있는 다이아몬드를 ‘팬시(fancy) 다이아몬드’라고 해서 별도로 가치를 평가한다. 가장 무색에 가까운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Diamond)의 첫 글자를 따서 ‘D’로 표기하고 색이 짙어질수록 다음 알파벳인 E, F, G … Z로 표기해 색 등급을 매긴다.


셋째는 무게(carat)다. 다이아몬드의 무게 단위는 캐럿(carat)으로, 1캐럿은 0.2g이다. 캐럿이 클수록 가치가 높다. 캐럿의 어원은 저울이 없던 때에 무게가 일정한 캐럽(Carob)나무의 열매를 이용해 보석의 중량을 달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바로 이 캐럽나무 열매 한 개의 무게가 0.2g이라고 한다.


넷째는 연마(Cut)의 정교함이다. 다이아몬드가 보석 중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 역시 연마 방법이 개발되고 난 이후다. 연마 과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브릴리언트 컷이다. 브릴리언트 컷은 원석의 낭비를 가장 적게 하고, 빛나게 깎아가는 방법이다. 컷트량이 많을수록 그만큼 정교하게 가공한 것이다. 그리고 정교하게 가공된 다이아몬드일수록 빛을 받았을 때 많은 굴절이 일어나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빛을 발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보석에 비유하셨다.


이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스가랴 9:1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거칠고 볼품없고 결점투성이인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연단하셔서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으로 빚어가고 계신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잠언 17:3)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1:7)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결정짓는 다른 조건들은 모두 자연적으로 발생되지만, 연마(Cut)만큼은 사람에 의해 가공되고 결정된다. 최고 가치의 원석이라도 어느 장인의 손에서 가공되었는지에 따라 그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장인 증명서가 있을 정도다.


우리들을 연단하시는 가공자는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우리의 가치는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원석 자체로는 가치 없어 보일지라도 깎이고 연마되고 가공된 후에는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다이아몬드처럼, 우리도 죄인의 삶을 살아가는 한낱 피조물에 불과했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서 연단되면서 완성품인 보석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신부이신 어머니 하나님을 빛나게 하는 장식품이 될 것이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이사야 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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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3일 목요일

벤살렘과 예루살렘




현대는 첨단과학의 시대다. 사람들은 과학을 신봉하고, 과학을 맹신하며, 과학자들이 마치 우리를 새로운 별천지의 세계로 인도해줄 구원자처럼 여기기도 한다. 우주과학, 생명공학, 유비쿼터스, 인공지능 로봇과 시스템 등 획기적인 과학기술은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때로는 그 앞에서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매스컴이 떠들어대는 유명 과학자의 모습은 대단히 도덕적이고 휴머니스트처럼 보이기도 하는 작금이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진보된 과학에서 찾고, 더 나아가 아름답고 편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학기술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과학 제일주의를 훨씬 앞서 대변하고 있는 사상가가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바로 그다.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16, 17세기 근대 초기 시대를 살았던 영국의 정치가이자 철학자다.


그는 그의 저서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과학의 힘이 펼쳐낼 미래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과학기술이 선도하는 인류의 미래를 내다본 베이컨의 통찰력과 예지력은 당시 시대 상황을 두고 볼 때 놀랍기만 하다. 카톨릭교회가 세상을 지배하던 당시는 과학적 진실을 말한 갈릴레오가 재판에 회부되어 비과학을 지지하고 정작 진실은 혼잣말로 읊조려야 하는, 상당히 미개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베이컨은 ‘새로운 아틀란티스’를 통해 인류가 갈망하는 유토피아, 즉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힘이 과학으로부터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은 이후 17세기 근대 과학문명의 이데올로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는 유토피아처럼 여겨지는 한 왕국이 등장한다. 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바람에 떠밀려서 ‘새로운 아틀란티스’에 도착하는데, 그곳이 바로 ‘벤살렘 왕국’이다. 이 벤살렘 왕국의 근간은 ‘솔로몬 학술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이컨은 이곳 솔로몬 학술원에 대해 깊이 있게 소개하고 있다.


벤살렘 왕국의 솔로몬 학술원에는 온갖 종류의 귀하고 훌륭한 발명품과 발명가들의 기념상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과학에 매진하는 일이 단순히 명예가 되는 것을 뛰어넘어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고 복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벤살렘 왕국은 과학이 지배하지만 도덕과 윤리가 살아 있는 이상적인 유토피아다.


베이컨은 ‘벤살렘’이라는 상상의 나라를 도입해, 과학이 인류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역설하고 있다. 그가 꿈꾸었던 대로 첨단과학의 시대가 오긴 했다. 하지만 과학이 더 발달되지 않은 탓일까? 도덕과 윤리가 살아 있는 벤살렘 왕국과 달리, 오늘날의 과학은 돈벌이 수단으로 변질돼버렸고, 도덕과 윤리는 점점 더 무너지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불편하고 불안하고 불완전하기만 하다.


베이컨이 꿈꾸었던 유토피아이자 새로운 아틀란티스, 벤살렘. 그리고 벤살렘 왕국의 근간이 되는 솔로몬 학술원. 왠지 낯설지가 않다. 베이컨은 성경 속의 솔로몬 왕국, 예루살렘을 보며 인류가 누리게 될 미래과학의 세계를 상상했었던 듯하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인류를 구원할 이상세계(理想世界)는 시온이며, ‘새 예루살렘’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렇다고 과학자들이 만드는 세계는 결단코 아니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사야 4:3)


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스가랴 13:1)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요한계시록 21:2~3)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하나님께서는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인류를 구원할 완전한 나라는 새 예루살렘 곧 우리 어머니로 말미암아 열리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고 계신다. 어머니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만약 프란시스 베이컨을 만나게 된다면 필자는 그에게 유토피아도, 새로운 아틀란티스도 아닌 벤살렘 왕국을 찾을 게 아니라 새 예루살렘이신 어머니 하나님을 찾으라고 알려주고 싶다.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 나라가 완전한 왕국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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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일 수요일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교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또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으니 자신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요한복음 3:16).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믿음, 사랑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 사랑과 다른 것이기에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갑자기 그 아이가 집에 친구를 데리고 왔습니다. 친구를 데리고 온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갑자기 친구를 데려오자, 식사준비를 하지 않았던 엄마는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 혹시 시금치 좋아하니?”
저녁 반찬거리가 시금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네, 저 시금치 아주 좋아해요.”
다행이다 싶어 엄마는 시금치를 맛있게 무쳐서 저녁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친구가 시금치를 전혀 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의아해진 엄마가 물었습니다.
“얘야, 너 시금치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니? 왜 하나도 먹질 않니?”
그러자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저 시금치 아주 좋아해요. 하지만 먹을 만큼 좋아하지는 않아요.”
엄마가 좋아하냐고 물어본 뜻은 당연히 먹는 걸 말한 것이었는데, 아이가 좋아한다는 의미는 보는 것이나 가지고 노는 것을 말한 것이었나 봅니다.

오늘날 기성교단의 모습이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과 사랑은 성경의 모든 예언의 말씀을 믿고 또 그 약속들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 (요한복음 14:21)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요한일서 2:3~4)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일서 5:3)

그런데 일요일 예배를 지키는 기성교단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되 예수님의 계명을 지킬 정도는 아니고 그저 입으로 부르거나 마음속으로 그리기만 하는 사랑이었나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예언들을 하셨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이기는 자)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3:12)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그들은 예수님을 믿되, 새 이름을 주시고 하늘 예루살렘(우리 어머니)께서 내려오실 거라는 그 약속의 말씀을 믿을 만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믿음과 사랑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다른 것이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을 지키고,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굳게 믿어서 그 예언이 모두 이루어지는 날에 하늘의 축복을 풍성히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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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30일 월요일

십자가에 대하여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십자가를 상징으로 삼고 교회 탑 위에나 내부에 두고 있으며 교인들은 이를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과연 십자가가 교회의 상징이며 섬김의 대상인지 교리비교를 통해 살펴보자.


십자가는 섬김의 대상이다


① 근거
사실상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세워 섬기라는 말씀은 성경에 없다. 이에 대한 근거는 역사책에서만 살펴볼 수 있는데 Baker's 신학사전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십자가가 사형틀로 사용된 것은 헬라인과 로마인들에 의해서였다. 이들은 이것을 또한 페니키아인과 페르샤인과 카르타고인들에게서 물려받았다.”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기독교에 대한 상징으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콘스탄틴 시대부터였다. 초대 교인들에게 십자가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것이었으므로, 십자가를 심미적으로 미화시킬 위험성은 전혀 없었다.”


십자가가 교회 안으로 유입된 것은 로마교회의 타락에서부터 시작된다. 로마교회는 이교도들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이 섬기던 대상도 함께 허락했다. 그중에 하나가 십자가다. 십자가가 교회와 사무실 안에 도입된 것은 AD 431년이며 교회 탑 위에 올라간 것은 AD 568년경부터다. 십자가를 숭배하는 교인들은 성경의 이 말씀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라디아서 6:14)


② 교단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이나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교단들은 천주교와 개신교 5대 교파, 여호와의증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 등이 있다.


③ 결론
2천 년 전,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교인들은 십자가를 ‘저주받은 나무’로 생각했다(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희생당한 끔찍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예수님 이전에도 사형틀로 사용되던 나무에 불과했다.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가 아닌 단두대형을 받았다면 오늘날 교회에는 또 다른 형상물이 존재하지 않을까.




십자가는 우상이다


① 근거
십자가가 우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경이 이를 명백히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4~6)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반포하시는 장면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둘째 계명으로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다.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고, 세우지 말며, 섬기지 말라고 하셨다. 또한 십자가를 숭배할 것에 대해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셨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강포로 이 땅에 채우고 또다시 내 노를 격동하고 심지어 나무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에스겔 8:17)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뭇가지에 불과한 십자가를 섬길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가증하다’며 그들의 죄가 작지 않음을 꼬집으셨다. 이와 함께 모세를 통해 오늘날 교인들이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저버리고 십자가만 섬길 것을 보여주신 내용도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민수기 21:4~9)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던 노중에서 일어난 일이다. 하나님을 원망한 백성들이 불뱀에게 물려 많은 사상자가 나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으로 뱀 형상을 만들라고 하셨다. 그 형상을 보는 모든 사람이 살 수 있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놋뱀 형상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놋조각)이라 일컬었더라 (열왕기하 18:3~4)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놋으로 만들었던 뱀 형상을 이때까지 숭배했다. 800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쳐다보면 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형이고 놋뱀은 유형이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자 칼뱅의 저서인 기독교 강요에서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기록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 가시적인 형상으로 만들자마자 즉시 하나님의 권능이 그 형상에 부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형상화하고 나서는 여기에 하나님을 결부시키고 마침내는 그것을 예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단순히 우상만을 예배하든지, 하나님을 우상으로 예배하든지, 거기에는 조금도 차이가 없다.” (기독교강요 184쪽 ‘형상물의 사용은 마침내는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한다’ 中)


이 모든 성경 말씀들을 살펴볼 때 십자가를 세워 상징으로 삼는다든지, 섬긴다든지 하는 내용들은 모두 우상 숭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② 교단
십자가를 우상으로 여겨 세우지 않는 교단은 대표적으로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있고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등 몇몇 개신교가 있다.


③ 결론
십자가는 우상이다. 성경이 이를 증거하고 있으며 교회의 역사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Baker's 신학사전에서도 “초대 교인들에게 십자가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것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끔찍한 것을 하나님께서 계시는 교회의 내부에, 또는 탑 꼭대기에 두고 상징이라, 거룩한 존재라며 성스럽게 여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십자가는 한낱 저주받은 나무로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그리스도의 고결하신 희생이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8~19)




2014년 6월 24일 화요일

어머니의 혈통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 제 십팔 년에 아비얌이 유다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서 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열왕기상 15:1~2)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 이십 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열왕기상 15:9~10)

여호사밧이 왕이 될 때에 나이 삼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이더라 (열왕기상 22:42)

아하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더라 (열왕기하 8:26)

예후의 칠 년에 요아스가 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열왕기하 12:1)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호앗단이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열왕기하 14:1~2)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이십칠 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륙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열왕기하 15:1~2)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 이 년에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니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륙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열왕기하 15:32~33)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삼 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라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열왕기하 18:1~2)

이스라엘 왕조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기를 기점으로 분열왕국의 길을 걷는다. 위에 언급된 왕조는 남 유다를 통치하던 왕들의 일부다. 그런데 이 성경 말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유다 왕들에 대한 기록 뒤에 항상 왕들의 모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는 모계의 혈통이 왕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임금으로 등극하는 세자에 대해 누구의 소생인지가 무척 중요했다. 만일 중전의 소생이 아닐 경우 왕위에 오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었다.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이나 반정 등을 제외하고 왕위에 오르는 일 순위는 무조건 중전의 소생이어야 했다. 이처럼 이스라엘에도 왕손을 구별하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혈통’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해 모계의 혈통을 증명해야 했다. 모계의 혈통이 이스라엘 민족이라야 왕이 되는 최우선적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래서 성경 열왕기에서는 유다 왕들이 순수한 혈통을 입증하기 위해 모친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었다. 이것은 우리 영혼에도 적용된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베드로전서 2: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셨다. 그렇다면 분명 하늘 어머니의 혈통을 이어 받아야 한다. 하늘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고서는 결단코 하나님의 자녀도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수많은 페이지 속에 열왕들에 대해 설명하시며 그들의 모친을 언급하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 한다면 반드시 하늘 어머니의 혈통을 이어받아야 한다.

하늘 어머니의 존재도 모르고,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