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8일 일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 [갈릴레이의 망원경]

 갈릴레이의 망원경



인간의 시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서 너무 작은 것도 볼 수 없고 너무 먼 것도 볼 수 없다. 그러나 망원경을 통해서 살펴보면 아무리 작은 것도, 먼 거리에 있는 사물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1990년 4월, 미국의 우주선 디스커버리호에 실려 지구 상공 610km 궤도에서 우주 관측을 하고 있는 허블우주망원경의 성능과 위력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길이 약 13m, 무게 약 12t의 대형버스 크기의 허블우주망원경은 인간의 시력보다 100억 배 정도 뛰어나다. 16,000km의 먼 거리에서 빛을 내는 반딧불이를 관찰할 수 있고, 1.6km 떨어진 거리에서 머리카락 두께의 틈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지동설로 유명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처음부터 로마 카톨릭과 투쟁할 것을 각오한 것은 아니었다. 수학자였던 그는 물리학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실험을 많이 하였는데, 1609년 군사적인 용도로 개량된 망원경을 발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성능이 더 나은 망원경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망원경을 가지고 성능실험을 하다가 우연히 달을 보게 되었다. 이제까지 그가 알고 있던 달은 유리구슬처럼 매끈매끈한 달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해보니 놀랍게도 움푹 파인 분화구와 울퉁불퉁한 표면을 갖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었다. 천동설은 오랜 세월 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왔고 널리 보편화된 상식으로 굳어져 있었다. 이처럼 돌같이 딱딱하게 화석화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전 세계가 새로운 지동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결코 하루아침에 된 것도 아니고 쉽게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갈릴레오에 앞서 코페르니쿠스도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해 지동설을 주장하긴 했지만 과학적인 증명이 없었기에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로마 카톨릭의 오판으로 갈릴레오 역시 이단학설을 주장하는 이단자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결국 그는 지동설을 입밖에 내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는 수모를 당하고, 종교재판 후 그는 8 년간의 여생 동안 가택연금을 당하는 고통 속에 임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갈릴레오 그가 망원경을 통한 천체 관측과 수많은 실험결과를 통해서 얻은 객관적인 증거자료가 없었다면,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나 천주교의 천동설 신념과 일반인들의 상식을 뒤집는, ‘지동설’이라는 위험한 주장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확실한 증거자료가 있었기에 오랜 세월 불편했던 진실을 세상 밖에 드러내기 위한 거짓과의 싸움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교황청으로부터 온갖 협박과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지동설의 이론을 확립하기 위해 객관적인 증거자료를 확보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는데, 고맙게도 그의 망원경이 일등공신 노릇을 톡톡히 해주었다.



무언가를 관찰하기 위해 망원경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그 조작법을 배우고 익히려고 애쓸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영적 세계는 육신의 안목으로는 볼 수 없는 곳이다. 아무리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한다 해도 결국 과학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영적 망원경에 해당하는 성경을 통해서만 놀라운 신비의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오직 성경만이 광활한 대우주의 영혼세계에 대한 지식을 풍성하게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영혼문제를 탐구하고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신 최고의 값진 선물이자 영적 망원경인 ‘거룩한 말씀’이라는 뜻의 성경을 주야로 상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성경을 단지 이스라엘의 역사책 정도로 생각하고, 심지어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성능 좋은 망원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용 목적도 모르고 사용 방법이나 필요성을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때 중세시대에는 일반인은 성경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고 금서목록에 올라 있다가 오랜 기간 후에 드디어 빛을 보게 되기도 했다. 이유는 1%의 탐욕을 꾸짖고 99%를 위로하는 책이라서 그랬다는 말도 있다. 당시엔 아마도 권력자들에게는 불편했던 책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성경을 깊이 연구하거나 성경대로 하는 것을 싫어하는 목사들이 많이 있는데, 뭔가 불편한 진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도 그런 목사를 만나본 적이 많다. 그들은 한결같이 성경을 펴지 못하게 방해하면서 자기 주장만 횡설수설 늘어놓는다. 그럴 때면 뭔가 진실이 드러나거나 거짓이 탄로날까 봐 두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오로지 구원을 목적으로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진실한 기독교인이라면 어떠한 어려움이나 시련도 다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해봐야 할 것이며 무조건 ‘우리목사님’만 찾지 말고 성경에서 구원의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구원과 영생은 구원자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데 왜 ‘우리목사님’만 찾고 매달리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안식일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 ‘우리목사님’을 붙들고 뭘 배우겠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다시 말하면, 잠잘 때마다 성경책을 머리맡에 두거나 교회에 오갈 때마다 성경을 들고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어떤 각도로 보고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넷째 계명으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주일성수를 일요일에 하고 있으니 안식일이 일요일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일곱째날 안식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이고 누구의 잘못인가? 이래도 되는 건가? 이게 어디 보통 문제인가?


성경말씀 외에 사람의 생각을 함부로 보태거나 빼면 재앙을 받거나 생명의 축복을 빼앗길 수 있다. 성경말씀은 성령의 감동을 입은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기록한 말씀이기 때문에 100% 신뢰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목사의 권위적인 명령과 요구에 무조건 아멘으로 굴복하고 교단, 교파, 교리에 옭아매여 있지는 않은가? 설교의 방향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엉뚱하게 성경에 없는 인간적인 철학과 교양강좌나 읊어대고 있는데도 소신껏 ‘성경말씀을 가르쳐달라’고 말할 수 없다면 심각한 상황이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생소하게 느끼고 있는 안식일, 유월절을 비롯한 하나님의 절기들, 재림 예수님, 어머니 하나님과 같은 말씀은 성경에 없는 것이 아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영적 망원경인 성경을 통해 얼마든지 확인하고 깨달을 수 있는 내용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라고 하셨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없는 주일성수,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을 신성시하고 합리화시키며 약물중독자처럼 각 교단의 교리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도 성경에 기록된 안식일과 유월절 같은 진리는 한사코 외면하고 거부하는 이유는 각종 신학논리와 학설에 묶여 오랜 시간 정신적인 노예가 되어 있다 보니 생겨난 부작용일 것이다.


이것은 흡사 망원경의 관측결과는 무시하고 오직 자신들만의 편협한 상식과 기성교단의 세력을 등에 업고 끝까지 천동설을 주장하며 교단을 옹호하는 일에만 혈안이었던 카톨릭 종교재판소의 권위주의적 이단심문관들처럼 어리석은 과오와 잘못된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심히 안타깝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천동설 옹호자들의 등쌀에 못 이겨 기를 못 펴고 무시당하다가 결국 죽긴 했으나 이제는 전 세계가 그들의 지동설을 받아들이고 있다. 아무리 거센 핍박과 비방을 받는다 해도 그것이 진리라면 끝까지 따르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갈릴레오가 친구에게 편지로 남긴 말이 있다. "진실을 모르면 바보, 진실을 알면서도 거짓을 가르치면 범죄자"라고.




출처_패스티브 https://www.pasteve.com/?m=bbs&bid=B2BibleCovenant&uid=2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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